봄바람보다 설렌 하루, 인천웨딩박람회에서 길을 잃다
토요일 아침, 눈을 비비며 일어났는데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빛이 묘하게 분홍빛이었다. ‘오늘 잘 풀리겠지?’ 중얼거리며 달력에 빼곡히 그어 놓은 빨간 동그라미를 다시 확인했다. 바로, 내 결혼 준비의 첫걸음이라 믿고 있던 인천웨딩박람회 가는 날. 사실 전날 밤에도 긴장해서 천장을 보며 작은 실수를 되뇌었다. “아, 초대장 캡처를 또 안 해놨어…” 다행히 출입구에서 바코드 찍을 때, 구글 포토 자동백업 덕분에 살아났다. 시작부터 TMI. 그런데 이게 또 일기란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지하철 1호선의 낡은 지지직 소리,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스탠딩에그의 목소리가 묘하게 섞여 마음이 복잡했다. 핸드폰 메모에는 ‘드레스 라인 체크, 스드메 패키지 견적, 한복 시착 예약’ 같은 말들이 숨 가쁘게 적혀 있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사람들의 목소리, 번쩍이는 조명, 시식 코너에서 풍기는 달콤한 크림 냄새. 와, 이게 현실인가?
장점·활용법·꿀팁
1. 공짜라기엔 너무 알찬 시식 부스
가장 먼저 코끝을 사로잡은 건 피곤함을 단숨에 날려 주는 따끈한 스테이크 시식 부스였다. 솔직히 인정, “예비 신부님 드셔보세요!”라는 말에 얼떨결에 두 번이나 줄 섰다. 한 번은 나, 한 번은 예랑이 대신… 🙃 버터향이 도는 구운 마늘에 고기를 얹어 먹는 순간, 견적서 계산기도 잠시 잊었다. 덕분에 다른 예비 부부랑 ‘이거 몇 번째 드시는 거예요?’ 하며 큭큭 웃었다.
2. 상담 동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입구 안내판을 보니 대부분 오른쪽부터 돌기 시작하더라. 나는 왠지 반항심이 꿈틀해서 왼쪽으로 꺾었다. 신기하게도 한산한 부스에서 바로 1:1 상담을 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대여 패키지 가격을 10% 더 깎았다. 직원분이 귓속말로 “사람 몰리기 전에 오셔서 가능했어요”라며 웃는데, 내가 뿌듯한지 직원이 뿌듯한지 모르겠다.
3. 예산 초과 막는 ‘실시간 메모’
전시장에서 상담 받을 때, 약간 들떠 있다 보면 ‘네~ 괜찮아요, 싸네요!’ 하고 계약서 사인해 버릴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즉석 메모 전략을 썼다. 폰 메모장에 ‘현재 지출 예상 230→목표 200’ 이렇게 빨간 느낌표까지. 상담사가 추가 옵션을 권할 때마다 슬쩍 메모를 보여 주니, 오히려 “그럼 서비스로 드릴게요”라며 선심을 쓰더라. 모 아니면 도인데, 이번엔 모였다.
4. 드레스 실루엣, 사진보다 거울
나만 그랬나? 조명 아래 거울에 비친 드레스는 사진보다 30% 더 예뻐 보였다. 현장 코디님이 “거울 색온도가 실제 예식장과 비슷해요”라고 귀띔해 줬다. 그래서 사진만 믿고 고르려던 내 계획은 수정. 거울 속 내 어깨선, 허리선, 그런 사소한 각도를 눈으로 새기고 왔다. 어쩐지, 나도 모르게 마네킹처럼 숨을 참았더라.
단점
1. 과한 프로모션의 함정
‘오늘 계약 시 100만 원 할인!’이라는 문구. 솔직히 솔깃했다. 그런데 막상 세부 내역을 들여다보니 옵션 몇 개를 묶어 두어서, 결국 가격이 비슷해진다. 잠시 마음이 욱해져서 “이거 꼭 오늘 결정해야 해요?”라고 묻자, 직원이 얼버무렸다. 후회할 뻔했지 뭐.
2. 엄지손가락 고통
견적서, 명함, 부스 지도… 손에 쥔 게 너무 많았다. 그걸 다시 사진으로 찍어 저장하다 보니 엄지가 욱신. 예랑이는 “너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손가락 근육 튼튼해지겠다”고 웃는데, 솔직히 부러웠다. 왜냐면 그는 대부분 내 뒤를 따라오며 먹기만 했으니까.
3. 정보 과부하
행사장 나오는 길,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좋은 정보가 넘쳐나는 게 꼭 행복만은 아니구나. 집에 와서 노트북을 열었는데, 새 탭만 스무 개. 뭘 먼저 봐야 할지 몰라 10분 동안 멍하니 커서를 흔들기만 했다. 그 잠깐의 허무함,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알 거다.
FAQ – 내적 독백 버전
Q1. 박람회 갈 때 커플 둘이 꼭 함께 가야 할까?
나는 혼자 가볼까 0.1초 고민했다. 근데, 견적서 두 배로 챙기고 2인 시식까지 누리려면 둘이 가는 게 진리다. 무엇보다 상대방 표정을 보면 ‘아, 이 항목은 안 끌리나 보다’ 감이 온다. 그 눈빛, 행사장 조명보다 솔직하다.
Q2. 입장권 꼭 예매해야 해?
현장 등록도 가능하긴 한데, 온라인 사전등록 하면 웰컴 기프트를 더 준다. 나, 비누꽃 부케 받았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은은한 향이 퍼져서 옆 칸 아기까지 킁킁 거리더라.
Q3. 예산 짜고 가도 결국 초과 아닌가?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강철 같은 메모와 ‘5분만 더 생각해 볼게요’라는 마법의 문장 덕분에 지켰다. 물론 예산 마지막 줄에 ‘커피값+택시비’ 적어 두는 것도 잊지 마라. 의외로 그게 덤벼든다.
Q4. 추천 방문 시간대?
개장 직후! 오전 10시, 사람 아직 덜 모였을 때. 난 11시에 도착했더니 한복 부스 줄이 이미 꼬불. 결국 30분 기다리다 허리 펴다 접다 반복했는데, 그때 예랑이가 옆에서 “우리 할머니 같다”고… 흠, 그 말은 묻어두겠다.
Q5. 원하는 업체가 안 보이면?
포기하지 말고, 행사장 주변 카페에서 잠깐 쉬었다 다시 들어가라. 부스 교대 시간이 있더라. 실제로 나는 빠르게 퇴장하는 드레스 업체 매니저를 붙잡아 1:1 미니 상담을 성공했다. ‘타이밍은 인연이다’는 진짜였다.
마무리, 그리고 한 줄 속삭임
돌아오는 길, 시식으로 이미 불러온 배를 두 손으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결혼 준비란, 결국 우리 둘의 호흡이구나.” 길 위 가로등 불빛에 비친 서로의 그림자가 묘하게 겹쳤다. 그 순간, 박람회에서 받은 종이 가방이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달콤함. 그 셋이 어깨동무한 채 내 걸음을 밀어 주는 밤이었다.